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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의 신기루: 포지셔닝의 지정학 (KR)

능력주의의 신기루: 포지셔닝의 지정학 (KR)

능력주의의 신기루: 포지셔닝의 지정학

현대 기업 경영에서 ‘능력주의(Meritocracy)’는 의심할 여지 없는 숭고한 이념처럼 여겨진다. 재능과 노력을 겸비한 인재를 발탁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제공한다는 원칙은 공정함의 동의어처럼 들린다. 그러나 경영의 실제 현장에서 능력주의는 예리한 양날의 검이다. 순도 높은 능력주의의 추구는 필연적으로 조직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로 몰아넣는다.

과열된 내부 경쟁은 건전한 성취욕보다는 소모적인 사내 정치를 부추기고, 구성원들을 즉각적인 단기 성과에만 매몰되게 하여 장기적인 비전을 실종시킨다. 더구나 끊임없는 증명의 압박은 핵심 인재들을 번아웃의 늪으로 밀어넣어 조직의 지속 가능성을 갉아먹는다.

물론 그 대척점에 있는 연공서열제 역시 정답은 아니다. 나이와 연차가 벼슬이 되는 조직은 무사안일주의(Complacency)의 온상이 되며,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고성과자들의 이탈을 가속화할 뿐이다. 결국 경영진에게 요구되는 것은 능력주의라는 이상과 조직의 안정성 사이에서 정교한 균형점을 찾아내는 고도의 ‘조율’ 능력이다.

리더 기용과 신뢰의 딜레마

이러한 ‘중용의 딜레마’는 리더급 인재의 기용과 신뢰 문제에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띤다. 새로 임명된 리더에게 조직은 얼마만큼의 시간과 인내심을 부여해야 하는가?

한두 번의 실책을 이유로 리더를 즉각 교체하는 ‘무관용 원칙’은 겉보기엔 기민해 보일지 모르나, 실상은 조직의 리더십 파이프라인을 고갈시키는 자충수다. 강등되거나 해고된 리더가 절치부심하여 다시 실무자로 돌아가 백의종군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인간 본성에 대한 순진한 착각이다. 그들은 대부분 경쟁사로 이직하거나, 조직 내에 남아 냉소적인 태도로 ‘조용한 퇴직(Quiet Quitting)’을 선택해 조직 분위기를 흐리는 인적 부채(Liability)가 된다.

반대로 한번 임명된 리더를 무한정 신뢰하는 것 또한 위험천만하다. 무능하거나 독선적인 리더의 장기 집권은 단순히 해당 부서의 생산성 저하에 그치지 않는다. 비합리적인 지시를 견디다 못한 유능한 실무급 인재들의 연쇄 이탈을 불러오고, 적시에 새로운 리더십이 등용될 기회를 차단하는 결과를 낳는다.

리더를 너무 빨리 내치면 상부 구조가 무너지고, 너무 오래 두면 하부 구조가 와해된다. 이 또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수 없는, 경영진에게는 영원한 난제다.

기회는 준비보다 위치를 따른다

이처럼 기업의 인사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며, 기계적인 공정함보다는 상황 논리에 따른 타협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구성원 개인이 취해야 할 냉철한 생존 전략이 도출된다.

개인의 성공은 순수한 ‘능력(Competence)’‘노력(Effort)’의 합이라는 믿음은 환상에 가깝다. 현실의 조직은 인재 풀(Pool)을 여기저기 분산시켜 놓은 뒤, 상황 변화에 따라 가장 접근하기 쉬운 ‘가용 자원’을 끌어다 쓰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즉,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자’에게 주어진다.

포지셔닝이라는 현실적 전략

따라서 현명한 구성원이라면 단순히 묵묵히 역량을 배양하는 차원을 넘어, 조직 내의 ‘지정학적 위치 선정(Positioning)’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변방에 있다면 중앙의 호출을 받기 어렵다.

회사의 자원이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 경영진의 전략적 집중(Strategic focus)이 어디를 향하는지를 끊임없이 모니터링하고, 기회가 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띌 수 있는 길목을 선점해야 한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조직 생태계에서, 결국 기회는 가장 실력 있는 자가 아니라 ‘가장 적절한 위치에 서 있는 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불완전한 능력주의 시스템을 역이용하여 자신의 가치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지혜로운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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